그리스도인으로 세계여행하기

[그리스도인으로 세계여행하기] 비전일기의 시작 /Beginning of the Vision Diary

잉잉이 이나리 2019. 9. 25. 17:25

#1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

여행이 선명해질 기록

 

 

travel

 

여행 

 

Jesus

 

예수님

 

Christian

 

그리스도인

 

 

 

 

 

"여행 속에서 예수님을? 에이, 너무 진부하잖아 

나는 여행에서는 진지하고 싶지 않은데?" 

 

누구에게는 진부할 수 있는 이야기.

혹은, 오히려 기독교인들에게 더욱 외면될 이야기.

 

그럼에도 내가 이 글을 쓰고자 하는 이유는

세계를 여행하는 나는, 어디에 있더라도 여전히 나의 본질이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에게는 수많은 역할과 직업이 주어지곤 한다.

딸, 엄마, 아내, 친구 등의 역할과 학생, 직장인, 혹은 여행가, 자영업자 등 다양하다

그러나 이런 역할과 직업 속에서도 내가 '사람'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여행을 떠나는 나는, 여행 속의 나일뿐 그 본질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평일은 "세상 사람" 주일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처럼,

한국에서는 그리스도인 해외에서는 "그냥 관광객" , "그냥 여행가"가 아닌 것이다. 

 

차곡차곡 쌓여가는 비전일기

 

 

기록을 마주하는 순간. 

 

몇 년 전,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 청년부를 중심으로 자원하는 자들을 모아 베트남으로 비전트립을 떠났다.

그 모임을 인도하시는 목사님께서 만들어주신 비전 노트 속에서 비전 일기를 처음 마주하게 되었다.  

새로운 기록법이었는데, 이 간단한 3가지가 여행을 더욱 깊고 감사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1. seeing - 그 날 처음 본 것 적기( 본 것뿐 아니라 오감을 통해 처음 경험한 것 )

2. feeling - 1번을 경험하며 내가 느껴지는 감정, 생각들 적기

3. drawing - 전체적으로 하나의 그림으로 표현하기 

 

비교적 1번, 2번은 있는 사실을 적는 것이기 때문에 쉬웠는데 3번은 접근하기가 정말 어려웠다.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하라고? 너무 추상적인데...

 

그날 나는 잠시 고민하다 국기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그 안에 보석과 꽃을 그려 넣었다.

 

베트남은 공산 국가 이기 때문에 종교활동이 자유롭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기독교인임을 밝힐 수가 없었다.

단체관광객처럼 돌아다녔다.

처음 경험한 베트남은 거리 조경도 예쁜 꽃들로 잘되어있고, 아름다운 경치들도 많았다. 

지나가는 베트남 여성분들도 정말 예뻤다.

 

근데 무언가 답답했다.

짧은 지식으로 알고 있던 공산주의가 이들의 자유를 막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꽃과 보석(은유적 표현)이 많은 베트남이 공산주의라는 국기에 뒤덮여 있다고 표현했다.

그게 내 첫 그림이었다. 

 

그림의 의미는 이글의 가장 마지막에 작성하려 한다.

비전 일기를 작성할 예정이라면, 그림의 의미는 나중에 보기를 권한다.

의미가 신경 쓰여서 느낀 점을 그대로 그리지 못할 수 도 있으니까.

 

 

헝가리 - 부다페스트의 겔레르트 언덕.

 

 

여행을 통해 하나님을 더 깊게 묵상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 것.

 

그 후, 개인적인 여행들을 떠나며 기록하기 시작한 비전 일기가 어느덧 7번의 여행을 거쳐 8권가량의 공책에 기록되었다.

처음의 작성법에서 조금은 변질되었을 수도 있지만, 큰 틀은 벗어나지 않고자 노력한다.

 

현실에서도 어려운 묵상을, 여행지에서 아침마다 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가능했던 건 어쩌면 여행의 세부적인 계획을 짜기 싫어하는 게으름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은 마음과, 그리스도인이라는 작은 찔림에서부터 

성경책을 보이는 곳에 두고 묵상하지 않으면 계속 신경이 쓰이는 기독교인들의 기본 습성까지도 

우연의 일치처럼 "그래, 여행은 특별하니까 묵상하고, 묻고 듣고 순종해볼까?"로 발전했다. 

아니 어쩌면, 나의 준비되지 않은 모습을 덮고자 하는 핑계였을지도 모른다.

" 내가 준비 안 하고 싶어서 안 한 게 아니야, 하나님이 내가 무엇을 보길 원하시는지 모르잖아?"

 

 

늘 여행은 세부적인 계획 없이, 

여행지들 선정과 이동 교통수단 예약, 숙소 까지만 예약을 진행하고 움직였다.

그리고 매일 아침 묵상 후에 묻는다 

"주님 오늘은 무엇을 보기 원하십니까"

 

동행한 친구와 같은 마음을 받으면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일한 마음이 아니면 다시 기도해보고 두 군데를 모두 움직이기도 했다.

혹은 시간에 쫓겨 묵상하지 못한 때에는 이동수단 속에서, 걸어 다니며 묻기도 했다.

 

그렇게 하나님과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우리 여행의 루트는 하나님이 정하셨기 때문에, 루트가 맘에 안 들고 힘들어도 서로를 원망하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하나님한테만 질문이 향했기 때문에 여행 내내 하나님께 시선이 더욱 맞춰질 수 있었고, 동행자를 배려할 수 있었다.

 

저녁에 작성하는 비전 일기는 꼭 함께한 친구와 나누었다.

덕분에 혹시 발생할 수 있었던 오해도 풀어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서로의 비전 일기를 통해 2배로 묵상할 수 있었다. 

 

그 노트들을 뒤적일 때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느낀다. 

 

어떻게 하나님이 이때에 이런 말씀을 하실 수 있지?! 

하나님의 지혜 아니고는 내 생각에서는 나올 수 없는 말씀들을 하신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를 여행하는데, 

원작자에게 계획과 뜻을 묻는 게 가장 확실하게 여행을 즐기는 방법이 아닐까? 

 

 

 

VISION TRIP. 베트남

 

 

글을 마무리하며 

 

비전 일기의 3번째 그림의 의미는 "나"를 가장 잘 나타내어주는 것이다. 

 

국기 속에 덮인 꽃과 보석. 

그게 나였다.

늘 답답하고 한계가 느껴졌다.

하나님은 나에게 "너는 꽃이요, 빛이요, 사랑이라"라고 말씀하셨는데 대체 나는 어느 부분이 꽃이고 빛이고 사랑인지 모르겠다고 늘 답답해하며 울었다. 

 

하나님은 그런 나에게 덮여있는 국기를 보여주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덮여있는 게 무엇인가"가 아니다.

"어떻게 벗겨낼 것인가"이다.

 

목사님은 국기를 벗겨내는 방법이 있다고 하셨다.

 

1. 맹인 바디매오 

(마가복음 10장 46~52절 말씀 중)

50. 소경이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맹인 바디매오가 사람들의 꾸짖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크게 불러 "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소리친 뒤, 자기가 가진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나아가는 장면이다. 

 

그때의 시대를 보면 맹인은 거리에 앉아 구걸을 할 수밖에 없는 죄인으로 취급받았으며, 죄인이 이렇게 길거리에서 소리를 치는 것은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목숨을 건 행동이다. 

그런데 바디매오는 목숨을 걸고 소리친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 소릴 외면치 아니하시고 돌이켜 그를 구원하신다. 

"눈을 뜨게 하시는 것" 뿐만 아니라 "구원"하신다

 

내가 내 겉옷을 벗고 목숨을 거는 용기로 예수님께 뛰어 나아가는 것.

그것이 첫 번째 방법이다.

 

 

2. 성령으로 눈이 먼 사도바울

(사도행전 9장 1~18절)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기독교 인들을 그 누구보다 핍박하던 사울이 다메섹 거리에서 성령의 빛으로 눈이 멀었다.

그리고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라고 하신다.

 

예수님으로 인해 눈이 먼 사울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 15~16절 말씀)

이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17절, 18절로 하나님이 직접 벗겨주시는 방법이다.

 

 

두 번째 방법은 내가 뜻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온전한 하나님의 주권이다.

또한 사울처럼 벗겨지게 되면 나의 남은 인생이 사도바울처럼 될 수도 있다.

 

사도바울처럼 벗겨지는 게 편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해석을 듣는 순간 주저됐다.

여기서도 느껴지는 편안하게 믿고 싶은 그리스도의 이중성이 싫을 뿐이다 

 

예수님은 믿고 싶고, 복도 받고 싶은데, 내 삶도 일부는 드리고 싶은데 사도바울처럼 온전히 드리기는 싫은.

 

 

아무튼, 

 

비전 일기의 모든 그림을 목사님께 갖고 갈 수 없기 때문에,  일단은 그날의 느껴지는 그대로를 여행 가운데 그려 넣고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모든 그림이 다 "나"는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많은 그림들 중 이런 그림이 하나만 그려진다 해도 가장 큰 수확이 아닐까? 

"나"를 나타내는 그림이 그려진다면, 분명 하나님의 많은 방법을 통해 그 그림을 설명해주실 것임을 기대한다.